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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금수 평론글(월간미술리뷰)- 2010. 12월

작성일 19-05-05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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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금수 평론글(월간미술리뷰)- 2010. 12월
 

 보이는 것만 믿으려던 때가 있었다. 그 덕택에 캔버스에서 날개 달린 천사는 사라졌다. 아니 잠시 유배당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믿을 것이 마땅치 않고 성급하게 판단하려 할 때 흔히 보이는 것만 믿는다. 그때는 그것이 과학적이고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섣불리 규정한다. 하지만 삶의 경험들이 일궈낸 현실은 보여줄 수 없는 것 투성이다. 더구나 너무 드러내보이는 것에 민망해하며 부러 외면하는 이들도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들 한다. 경험 때문인지 나이가 들면서 판단은 점점 빨라지지만 그만큼 단순해진 사고들이 보이는 것을 제어하고 있음이 두렵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에게 채워진 눈 가림막 처럼 이제 바로 옆이나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느낄 수 없다. 솔직히 지친 몸이 보내오는 정보들은 더 이상 마음에 설렘을 만들어 주지 못한다. 그야말로 어정쩡하고 식상한 함정에 남한의 형상회화가 빠져버린 것 같다. 이쯤 되면 차라리 막무가내로 생각하고 행동하던 사춘기가 그립다. 아무것도 몰랐지만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지 못했던 그 시절 말이다.
 함명수의 화폭에는 여전히 형상회화에 대한 굳건한 애정과 신뢰가 담겨 있다. 회화가 몸과 마음이 만들어낸 표현이라는 믿음 말이다. 함명수는 자신의 회화를 ‘문지방’이라 일컬은 적이 있다. 이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를 의미한다. 회화에서는 내용과 형식일 수도 있겠고 몸과 마음을 한 아름에 담아보려는 화가의 욕심일 수도 있다. 외부와 내부의 경계를 이루는 틀인 ‘문지방’은 함명수라는 화가를 존재하게 하는 틀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비상구인 셈이다.
 그의 화폭을 처음 대할 때 꿈틀대는 육욕에 충격을 받았다. 무엇을 그렸느냐보다 화가의 짓거리가 너무나 절박해 보이는 회화의 방식이 눈길을 끈다. 때론 너무 화려하고 때론 징그럽기도 한 땀내음 나는 행위가 화폭을 가득 채웠다. 그리려는 것보다 그리는 것이 더 절실해 보이는, 그래서 무의미한 붓 터치의 동어반복처럼 읽힐 수도 있는 안쓰러운 수고로움은 화가의 마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때로는 기계적으로 정형화된 듯 하지만 뜨거운 열정으로 녹아내리는 물감덩이와 날렵한 붓놀림들은 굿거리장단처럼 격앙된 분위기를 유도한다.
 다음으로 어느 도시의 장관에 맞서게 된다. 무언가 분주히 돌아갈 것 같은 거대한 도시의 풍경과 후미진 골목 등이 그려졌다. 원색적인 물감들의 꿈틀거림 때문인지 풍경들은 자연스럽게 왜곡되었다. 아치 아지랑이 너머의 소인국을 보는듯한 느낌이다. 과감한 단순화와 유기적인 변형으로 구축된 달구어진 도시는 화가의 짓거리로 흐믈거리며 흘러내린다. 그려진 대상이 먼저인지 함명수가 택한 기법과 형식이 우선인지 알 수 없지만 하나의 목소리가 되어 들려주려 하는 것은 이글거리는 아우성이다. 거대 시스템에 의해 운영되는, 겉보기에 화려하지만 한편 우울한 도시 풍경이다.
 이 육욕과 풍경을 곱씹으면 치열한 현실과 이미지의 싸움이 펼쳐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이 재현이건 환영이건 사고이건 짓거리이건 상관없다. 생경하고 어수룩하지만 어차피 기존 잣대로는 가늠하기 힘든 새로운 ‘문지방’이 만들어진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백한 것은 현기증 나는 현실의 반영과 변형으로 짜여진 이미지와 발언들의 중첩으로부터 힘을 얻은 회화라는 점이다. 여기서 새로운 회화의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는 화가 함명수의 수고로움을 눈치 챌 수 있다. 강박에 가까운 그려야 한다는 태도와 회화의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반성들이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나 그 새로움은 함명수에 의해 철저히 학습되거나 계산되었다기 보다는 남한 형상회화의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체득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줄리언 벨(Julian Bell)의 지적처럼 ‘새로운 회화를 위한 맥락은 외부적이고 일시적인 우연성에서 올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제도나 내부적인 응집력과 같은 단일한 관례로서의 회화는 현재로서는 시대에 뒤처진 것’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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