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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 평론글(스페이스 향리 개인전), 2008,11

작성일 19-05-05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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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 평론글-2008. 11월
 

회화의 방법적인 문제가 캔버스 밖으로 확장되고, 붓을 떠난 회화들이 등장하는 현대 미술계에서 함명수의 회화는 독자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현대 회화가 캔버스를 하나의 경계 혹은 '진부'한 것, '억압'의 틀로 간주하고, 예를 들어 사진이 가진 극 사실적 효과를 끌어들이는 등 타 장르와의 교류를 통해 끊임없이 캔버스라는 틀 밖으로 나가기 위해 시도를 하고 있는 것에 작가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방법론적인 관점에서 함명수의 회화는 오히려 붓의 터치와 색상의 탐구에 '집착'하는, 회화의 근본에 충실한 경향을 보인다. 형식적인 면에 있어 붓의 터치를 이용하여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작가는 '인상파적' 접근 방식과 유사한 면모를 보이나, 드러나는 기표적 특성만으로 작품을 판단한다면 작가의 의도를 오해할 수도 있다.
작가는 창조자로서 작가 자신과 대상으로 간주되는 창조물로서의 회화에 객관적인 거리를 두는 듯 하다. 작가는 그린다는 행위에 있어 소재에 집착하여 소재의 물성, 주관성에 초점을 두기 보다 소재를 시각화 하는 방법론에 더욱더 관심을 기울인다. 함명수에게 그림의 소재는 그야말로 하나의 대상이며 작가가 회화의 본질적 요소를 탐구하는 데에 필요한 하나의 물질인 것이다. 그는 작가 노트에서 '세상과 호흡하며 어떤 대상을 충분히 기록, 재현할 수 있으리라 믿지만 작업을 실행할수록 그림의 존재, 회화의 현실을 직시하고 자각하게 되는 것 같다. 이것이 사물을 그리기보다는 터치들을 그리게 된 이유이다. 회화에 있어서 터치와 색채는 그림의 존재이며 본질적인 요소로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세필로 캔버스를 매워가며 이루어지는 작가가 회화의 본질로 간주하는 터치와 색채에 대한 끈질기고 집요한 연구는 자화상, 초 등 전통적인 소재로부터 건축물, 채석장, 민들레, 달, 해골, 자동차, 권총 등에 이르기까지 현대적 소재를 넘나든다. 그림에 형상화되는 카테고리화 될 수 없는 폭넓은 오브제 선택에 대한 해석은 유동적인 관점에서 관람자의 자유의지에 맡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회화의 표면에서 드러나는 뜨개실의 보푸라기 같은 마띠에르는 고요하고 엄숙한 슬로우 무브먼트의 흔적이며 붓 터치들은 고스란히 시간의 흔적이 된다. 작가는 회화의 진행을 이야기 할 때 '그린다'라는 단어 대신 '올린다'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이것은 캔버스 위에 물감을 여러 번을 겹쳐 그리는 것을 빗대어 하는 말로 마치 여러 장의 레이어를 한 겹 한 겹 포개어 올리는 듯한 과정을 의미한다. 마치 실험실에서 여러 표본을 탐구하듯 작가는 서로 다른 소재가 담긴 여러 개의 캔버스를 열거하고, 이 작품들의 병렬적 진행을 군무적 형태로 서서히 완성시킨다. 이 과정에서 함명수는 '대상의 의미보다는 그림 그 자체의 변주와 증식(작가 노트 중)'에 흥미를 느끼며, 반복적인 듯 보이나 결코 기계적 균일한 반복이 아닌 이 붓 터치들은 평면의 캔버스에 입체감, 공간감을 부여하면서 회화의 본질에 대한 작가의 심층적 연구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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