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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를 그려내는 붓질 김민기 평론글

작성일 19-05-04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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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를 그려내는 붓질 김민기 평론글-2006. 2월

함명수는 회화를 그려내는 붓질, 대상을 선택하고 회화로 환원하는 과정 속에 숨겨진 회화의 진실을 찾아내려는 방법을 천착해 왔다. 최근 1년 동안 이미지를 채집하듯 자신의 회화영역에 이끌려 들어오는 채석강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회화로서의 재현적인 문제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대상으로서의 채석강은 상하 층층별로 축척된 오랜 시간의 이미지와 외적인 영향(비,바람,파도)에 의해 좌우로 형성된 속도감 있는 형태들이 작가에게 복합적으로 강한 영감을 주고도 남았으리라 생각한다.

오랜 시간동안 끝없이 퇴적되고 풍화된 채석강을 통해 상반된 시간의 이미지가 중첩되고 충돌하며 교차하고 있다. 또한 이 이미지에 지나가는 사람, 자동차, 새 등과 같은 현재의 순간적인 풍경이미지가 어우러져 새로운 회화의 시공간을 넘나들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런 시도들은 이전에 선보였던 개인전 <면발풍경>(2001)에서 <Scape series-정물>(2004)에 이르기까지 계속 천착해왔던 시간과 속도, 움직임에 대한 관심을 일괄해 오고 있는데 이번작품에서는 그가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이전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전 작품들이 대상과 회화의 존재를 상실시킴으로써 오히려 대상과 회화의 본질의 차이를 일치시키며 좁혀나가는 회화의 방법론을 추구해왔다면 이번에 처음으로 선보인 <Scape series-채석강>에서는 대상의 의미론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대상에서 그대로 보여 지는 축적된 시간의 이미지와 유기적인 붓질의 흔적이 다른 차원으로 결합을 시도하며 예전부터 고집스럽게 억 메어 있던 회화에서 벗어나 원초적인 회화의 본질에 대한 문제를 다시 접근하고 있는듯하다.
여기에서는 사진과 영상이 한 몫을 하는데, 채석강이란 대상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제작중간의 작품, 즉 흑백톤으로 처리된 작품을 차도가 있는 외부공간으로 옮기고 반대편에 영상카메라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작품 앞으로 차들이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풍경을 담아냈다. 이 영상에서는 작품이 최종적으로 완성되어가는 과정에 있어서 중간단계에 존재하는 흑백작품의 시간과 붓질 하나하나에 부여된 작은 기억의 편린과 같은 시간, 회화로서 존재하는 공간적인 시간과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자동차의 잔상 속에 숨겨진 현존하는 현실의 시간, 또한 이와 같은 복잡 다양한 시간을 혼합한 영상 자체의 시공간과 전시장 공간에서 상영되는 현장감 등 다양한 시간적 의미들이 내포되어 있다.
그리고 중간단계의 이 흑백작품을 사진으로 현상, 채색하여 다른 각도로 회화론을 획득하며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데, 그것은 얼핏 보면 작가가 채석강에 실제로 바다를 걷고 있는 듯이 흑백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사진을 현상하고 그 위에 밀물과 썰물을 다시 아크릴로 채색한 것이다.
중간단계의 회화의 시간과 작가의 퍼포먼스의 시간, 이것을 사진 한 장으로 현상했을 때의 복잡한 시공간, 그리고 다시 밀물, 썰물이란 시간을 그려낸 시간적 풍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회화의 본질 추구라는 의미론적인 접근 해석을 유도하고 있다. 이 작품들은 리히터의 사진회화와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사진을 캔버스 위에 재현한 작품과 사진의 일부를 물감으로 처리하거나 사진을 그린 회화 작품을 다시 찍는 리히터의 작품과 동일선상에 위치해 있다.
함명수는 사진과 회화의 관계를 극적으로 다루고 있다. 회화가 과연 어떠한 매체로도 대체될 수 없는 독자적인 영역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 어느 지점에서 가능한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들이다. 원래 사진과 구별되는 회화로서의 차별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회화와 사진을 동일선상에 두고 어느 것을 차용하느냐에 따라 또 다른 차원의 이미지로 구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사진과 회화, 회화와 사진 사이에서 회화가 과연 다른 매체와 구별되는 독자적인 영역으로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한 탐구를 시도한다고 볼 수 있다.
전통적인 회화의 재현 기법과 현대의 사진 이미지 사이에 놓인 간극을 중재하고 그 이중성을 교차시키면서 고전적인 재현과는 달리 유기적인 붓 터치를 발휘하여 조용한 형상미를 현대적 미감으로 캔버스 속에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흑백의 큰 붓질로 처리된 중간단계의 작품에서 작은 붓질로 석양을 받아 빛나고 있는 채석강으로 마무리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는 회화를 거꾸로 그리는 듯한 제작방식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상을 작은 붓질로 전체의 대상을 이끌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먼저 큰 부분을 그리고 다시 작은 붓질로 물감이 채 마르기도 전에 채워나가는 거의 거꾸로 그리는 방식이다. 또한 전체적인 균형을 맞추며 그려나가는 것이 아니라 글씨를 써내려가듯 위에서 아래로 전개해 나간다. 이 때 유기적인 붓 터치는 대상이 아닌 또 다른 대상회화로 생명성과 영원성을 부여 받았으며 반복적인 붓질로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편린을 펼치면서 제작과정의 순간순간을 발견한다.
작품제작의 처음 시작과 마무리 끝을 금방 눈치를 채게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붓 터치의 과정에서 쉽게 알 수 있는데 윗부분의 붓 터치는 아래 부분보다 가늘며 뿌연 느낌을 주고 있으며 아래로 갈수록 점점 선명해지며 맑다. 그것으로 인해 작품의 처음과 마무리까지의 시간대가 느껴지며 아래부터 위로 쳐다보는 작품의 실제 크기보다 웅장한 시각적 효과를 얻고 있다. 일정한 붓질의 마띠에르는 제작과정의 현장성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작은 붓질들은 시간을 초월하는 무시할 수 없는 감동으로 회화의 한계를 극복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겹겹이 축적된 붓질의 형상과 채석강이라는 시간의 이미지 결합은 이런 시도에 적합한 대상으로 선택되어 네러티브에 대해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번 전시에서는 자신의 삶의 일부분인 대상의 시간적, 시각적, 형상적 갈등을 영원성과 순간적인 시간으로 평면에 고착시킴으로서 자신의 회화를 관통하도록 유도한다.
그것이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관찰력을 동원하여 대상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재현에 충실하지만 탈재현적인 작품으로 결국 자신의 시각적인 회화로 돌아온다.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이 대상의 고유한 형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대상에서 멀어짐으로서 불변하지 않는 대상을 인식하는 의도된 행위가 그의 회화로서 재현하는 매력을 발산한다고 할 수 있다.
대상에서 출발하여 회화의 성찰을 거쳐 시각적인 대상보다 더 대상 같은 회화로 이끌어 낸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최종적으로 “회화란 무엇인가” 라는 처음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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